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3세 (문단 편집) == [[튜더 왕조]]의 시작 == 전투가 끝난 뒤 헨리 튜더의 의붓아버지 스탠리가 리처드 3세의 [[왕관]]을 발견하고, 이걸 헨리 튜더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. 그리고 그 순간부터 [[튜더 왕조]]가 시작되었다.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지만 헨리는 혈통 문제, 엘리자베스는 부모의 결혼 문제 때문에 둘 다 ~~문제 있는 남녀가 만나서~~ 정통성이 약했던 튜더 왕조에서는 리처드 3세를 [[찬탈자]], 조카 살해자같은 음흉한 이미지로 퇴색시켰고, [[엘리자베스 1세]] 여왕 시대에 이르러서는 [[세익스피어]]등을 포함해 이후에 다시 그려진 초상화까지 리처드 3세를 준 악마급으로 폄하했다. 현존하는 리처드 3세의 사후 초상화를 평가한 미술전문가들은 전쟁터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진 전투군인의 모습보다는 의도적으로 음흉하고 음모가 가득차 있게 그렸고, 특히 리처드 3세의 척추측만증을 일부러 더 과장해서 그렸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.[* 연구과정에서 발굴해낸 튜더 시대에 다시 그린 초상화의 원본이 되는 리처드 3세가 살아 있을 때 그린 초상화 또한 일부러 어깨를 과장해서 그리지 않은 그냥 일반적인 초상화였다.] 예를 들자면 [[군인]]의 모습인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강조하려 손가락을 보면 상당히 갸날프게 그렸고,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척추측만증을 과장해 곱추로 그렸다. 위에 초상화를 다시 확인하면 알겠지만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두드러지게 높게 그려져 있다.[* 세익스피어나 튜더 왕조의 프로파간다와는 별개로 리처드 3세 당시 그를 실제로 만나보고 남긴 기록이 몇 개 남았다. 그중에 하나만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좀 높았다는 기록 말고는 리처드 3세의 체구를 모사한 다른 기록은 현재로서는 없다.] 그러나 [[현대]]에 와서는 유능한 행정가고 전투에선 용감한 전사, 즉위 전에도 잉글랜드 북부를 그럭저럭 잘 통치했다고 재평가 된다. 왕으로서의 치세는 고작 2년이기 때문에 즉위 이후의 실책을 평가하기엔 좀 짧은 [[시간]]이다. 그런데 척추측만증 환자가 평상복을 입으면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지 않고선 [[일반인]]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. 하물며 리차드 3세는 왕족으로서 일반인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었을 터이니 더 눈치채기 힘들었을 것이다. 다시 말해 리처드 3세의 척추측만증은 아마도 직계 왕족이나 옆에서 시중을 드는 몸종이 아니면 모르는 비밀이었으나, [[장미 전쟁]]에서 사망한 뒤 고인능욕을 당하면서 꼽추라고 세상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. 거기에 리처드 3세의 척추측만증을 조롱하기 위해 [[세익스피어]]의 극 리처드 3세에는 심각한 곱추이면서[*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등에 베게를 넣은 듯한 꼽추.] 함께 왼팔 전체가 오른팔보다 짧고 마른것으로 묘사하기도 했고 이후 세간의 인식도 그렇게 전해저 내려 왔다.[* 유골 측정 결과 척추측만증 외에 별다른 장애는 없었다. 다만 유골이 상당히 여성성을 띠어 초반에 연구진들이 긴장했었다. 세익스피어 극 리처드 3세의 모습이 심히 과장은 되었지만 리처드 3세의 체구가 매우 말랐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묘사였다.] 임금님이 곱추라고 소문이 세간에 돌았다 해도, 겉으로 보기엔 잘 차려 입고 거기에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해 전공을 세우는 임금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이 '임금님은 곱추'라는 말을 부정했을 가능성이 높다. 물론 고인능욕 이후로는 그런 이미지가 쫙 퍼졌지만. || [[파일:shakespearerichardiii.jpg|width=100%]] || || 세익스피어의 극 리처드 3세의 일반적인 연출 모습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